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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탁월하고 가장 순종적인 船長(8.19.화.책읽기)...

황승현 | 2014.08.20 14:07 | 조회 3674
4. 포르투갈 황태자(1394~1460년)...
포르투갈을 세계 강국으로 만들고자 했던 그는...
커다란 재정적 희생을 감수하면서...
동방의 풍요로운 향료 나라로 가는 해로를 찾기 위해...
해안을 따라 가는 포르투갈의 탐험여행을 후원했다...

5. 포르투갈 상비센터의 황량한 갑인 사그레스에서 엔리케는 해양학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모았다...
자석나침반, 풍향표시판, 천체관측기를 사용해 본 경험이 있는, 세계 각지에서 온 항해자와 유명한 지도제작자, 학자, 발명가 등을 포함해 가까운 타호 강과 도우루 강, 먼 라인 강과 루아르 강의 선공들도 있었다...
1419년 사그레스는 개축된 그의 전략적 사령부였다...
엔리케의 탐험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한 신경중추였다...

엔리케의 보자도르 곶 공략은 1415년 지브롤터 해협을 마주보고 있는 무어인의 요새 세우타의 정복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를 통해 그는 아프리카에 기반을 두게 되었다...
계속 원정을 계획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그는 도시를 돌려주고 동생을 데려오는 대신 동생이 무어인의 감옥에서 끔찍한 죽음을 당하도록 내버려둔다...
무어인이 정복한 세우타는 그의 계획에서 지속적인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1433년 여름, 엔리케 왕자는 마침내 인내심에 보상을 받았다...
그 해 6월에 처음으로 "선장들 중 가장 탁월하고 순종적인 사람", 즉 에아네스에 대해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에아네스에 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라고스 출신으로, 사그레스에 있는 엔리케 궁정의 시동이었다...
그의 선원들은 대부분 낮은 계급 출신이었다...
1433년 에아네스 기사단이 출항했을 때 그가 받은 명령은 보자도르 곶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단지 몇 마일이라도"...

6. 사그레스를 떠난 지 열흘 정도 되었을 때 우현의 선수 앞에 푸에르테벤투라 섬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선원들은 곧 세계의 변경에 도착하게 될 거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괴물이 노리고 있는 곳, 태양이 너무 뜨거워 바다가 끓어오르며 인간들이 바로 새까맣게 타버리는 곳,
자장을 지닌 암석이 스텔라 마리스를 잡아당기고, 용골에서 쇠 장식들을 끌어내는곳, 역청이 녹고 배의 이음새가 갈라지는 곳...
그래도 에아네스는 항로를 유지했다!...
태양을 찌르는 듯 강해졌고, 역청이 절말로 검은 방울이 되어 이음매에서 반짝이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해안은 점점 더 황량해졌다-그리고 곧 그들은 바로 눈앞에서 세계의 변경을 보았다...

보자도르 앞의 절벽과 암초들!
수심이 얕은 곳에 가까워지자 위험하게도 배가 부글부글 끊는 바다에서 심하게 피칭을 했다...
사내들은 선수로 몰려가 앞를 바라보았다...
성호를 긋고 몸을 떨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바닷물이 용골 밑에서 우유처럼 하얗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노 젓는 사람들이 애원했다...
"배를 돌립시다! 바다가 끓고 있어요!"...
그러나 에아네스는 빈 포도주통을 내려 물을 가득 채우고 난 후 다시 끌어올리게 했다...
그는 물에 손을 넣어보았다...
선원들에게도 똑같이 하라고 명령했다...
"알가르베 해안의 바다와 마찬가지로 이곳의 바다도 끓는 것이 아니다."...
그는 비난하듯이 말했다...
"바다가 하얗게 끓어오르는 것은 절벽에 부딪혀 생긴 거품일 뿐이다."...
그리하여 에아네스는 선원들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7. 뜨거운 한낮에 그곳을 지날갈 때 선수에서는 바다가 찰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뱃전에 부딪치는 바람의 쉿쉿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선원들이 다시 뱃전으로 모여들었는데 눈에는 두려운 기색이 역역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며칠 전에 지나온 것과 동일한 해안이 천천히 나타나는 듯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갔을 때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알았다...
이 육지는 남쪽으로 멀리 펼쳐져 있었다...
평평하고 모래가 많으며 태양을 받아 반짝이는 평지였다...
균일한 형태의 해안선에는 갑이 없었다...
그리고 북쪽에서 그들이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경계선을 이미 지나왔음을 확인했다...
보자도르 곶을 지나온 것이다!...

미신은 깨졌다...
1,000년의 전설, 세계가 보자도르의 암초에서 끝난다는 전설은 반증되었다...
유명하 경계선 저 너머에, 삶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그렇게 오랫동안 생각했던 지점 저편에 새로운 대륙과 다른 민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확실해졌다...
1434년 여름, 그날의 수평선을 더 이상 장벽이 아니었다!...





가장 탁월하고 가장 순종적인 선장...
- 질 에아네스가 보자도르 곶을 돌다-

15세기에 유럽의 역사적 공간이 확장되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탐험여행은 지구의 크기에 대한 인류의 생각을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중세에 대부분 잊혀진 고대의 발견들이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극지역만 제외하면 세계의 해안선들은 지리학적으로 어느 정도 정확하게 파악되었다...
원양항해의 이런 특이한 전성기는 경제적, 국가적, 종교적, 학문적 요소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며,
항해술 분야의 결정적인 발전을 통해 가속화되었다...
이 시대의 거의 모든 여행은 잘 기록 되어있다...

예외가 있다면 15세기 포르투갈의 여행이다...
향료섬으로 가는 해로를 찾기 위한 수년간의 시도는 많은 비용을 소모시켰고 작은 나라인 포르투갈에 파멸을 초래하고 말았다...
유럽에서 열망하던 향료 거래는 인도 사람들과 아라비아 사람들, 베니스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후추 가격은 원산지에서 소비자의 손으로 들어갈 때까지 80배나 비싸졌다...
아프리카 남단 끝을 돌아 가는 해로의 발견이 비밀로 유지되었음은 당연하다...
결국 그들은 너무 일찍 새로운 경쟁자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라비아 사람들의 독점에서 벗어나야 했다...
처음에는 회의와 두려움, 반대가 많았다...
보자도르 곶을 배로 일주하는 일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는 모험적이고 중요할 뿐 아니라 근세 탐험의 역사를 진행시키는 중요한 항해였다...
에아네스(Gil Eanes)의 여행으로 포르투갈 원정대의 긴 행렬이 시작되었다...
그 원정에서 선박들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희망봉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그러다 마침내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했다...

1,000년 이상 보자도르 곶은 세계의 변경으로 간주되었다...
보자도르 곶은 서아프리카의 사하라 해안, 카나리아 제도보다 더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곶은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가파르게 내려가는 혀 모양의 곶, 그 끝에 거의 20미터 높이의 절벽에서 사암석이 튀어나와 있다...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장소는 아니다...
그러나 이 곶은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의 마지막 전초지로 간주되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 뒤에 어둠의 바다, 지옥, 미탐험 대륙이-거기서는 어떤 여행자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페니키아 갤리선 이후로 어떤 선원도 감히 보자도르 곶을 넘어가 살아남은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에아네스라는 이름을 전혀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15세기에 그 이름과 보자도르 곶은 콜럼버스와 그가 발견했다는 인도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인정받았다...
그것도 좋은 이유에서 그렇다...
왜냐하면 그 시기에 보자도르 곶을 넘어 항해한다는 것은 대서양 횡단보다 더 용감하고 선원으로서 더욱 훌륭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보자도르 곶이 철책처럼 보였던 이유는 무엇인가?...
사하라 해안은 세계에서 가장 음울하고 황량한 지역중 하나다...
보자도르 곶에서 모래 절벽으로 이루어진 사막이 끝난다...
모래절벽들은 강한 바람에 날려 괴성을 지르며 대서양으로 날아든다...
바다는 고요하고 수심이 계속 바뀐다...
절벽 중 하나가 바닷속으로 들어가면 그 파편이 사라질 때까지 바다는 마치 물이 끓어오르는 듯하다...
조류가 강하고 자주 변하며, 하마탄(북서부 아프리카의 열사풍)이 사막에서부터 소용돌이치며 불어오면 바람은 약하거나 뜨겁고 강하다... 여기서부터는 암초군이 8킬로미터 이상 펼쳐져 있다...
바다 밑바닥은 암초로 가득하고 깊이가 얕은 곳이 많았다....
해안 앞 14킬로미터 되는 곳이 세길(한길 1.8미터) 정도밖에 안된다...
카나리아 제도 남쪽으로 바람과 조류가 방향과 속도를 바꾼다...
처음에는 바람과 조류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항해하는 배에 유리하다...
그러나 보자도르 곶이 있는 위도에서 바람은 갑자기 남서쪽으로 바뀌며 무거워진다...
반면, 바람은 육지에 부딪혀 돌면서 광활한 대서양 중부로 방향을 바꾼다...

그러니 선원들의 두려움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15세기 카라벨들이 바람과 조류의 불리한 조합에 저항해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단 말인가?...
카라벨은 아라비아의 다우선처럼 삼각돛을 달고 있다...
아라비아의 다우선은 맞바람을 안고 달리는 데 탁월하다...
카라벨 역시 5포인트 내지 6포인트까지-55도에서 65도까지-바람을 거슬러 진행할 수 있다...
물론 바람이 뒤에서 비스듬하게 불거나 정확하게 뒤에서 불 때도 항해가 가능하다...
더 나아가 카라벨의 구조는 바다에 적합하다...
카라벨이란 단어는 카벨(carverl)이라는 조선 전문용어에서 나왔다...
카벨은 외부 선판을 서로 겹치지 않게 이어붙인 선체를 지칭한다...
용골은 강한 너도밤나무로 만들어졌다...
늑재와 현판, 선수재, 선미재는 지중해 연안의 소나무로 만들고,
해변의 유럽 소나무로 만든 선판과 노는 한자동맹의 코게선 방식에 따라 돌쩌귀 축을 가지고 있다...
카라벨은 탁월한 조합품이었다...
선체구조를 보면 유럽 방식에 동양선박의 삭구, 북유럽 선박의 키를 결합시켰다...
그 장점이 동시대의 베니스 자료에 이렇게 요약되어 있다...

"이 배들이 세계의 모든 항구에 도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 배는 바다를 항해하는 최고의 범선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동기가 없었다면 카라벨들은 절대 보자도르 곶을 돌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남쪽 미지의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극이 필요했다...
엔리케는 1394년 포르투갈 옹 주앙 1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해상 역사에서 불가사의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일부는 신비주의자이자 성자였으며, 일부는 군인이면서 학자였다...
엔리케 왕자는 자신의 삶을 고대 이후로 아무도 더 이상 추앙하지 않았던 바다의 신에게 바쳤다...
바다에 대한 사랑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역사가들은 대개 호전적인 기독교 신앙을 부각시켰고 그를 마지막 십자군이라고 칭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의 탐험의지가 부유하지 않은 소수 민족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 되었을지 생각한다...
그래서 조국이 힘을 다할 때까지 피를 흘리게 한, 길을 잘못 든 열광주의자라고 엔리케를 비난하기도 했다...
양쪽 판단에 모두 약간의 진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엔리케가 지녔던 비전의 위대함과 선견지명은 부정하기 힘들다...

엔리케의 보자도르 곶 공략은 1415년 지브롤터 해협을 마주보고 있는 무어인의 요새 세우타의 정복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를 통해 그는 아프리카에 기반을 두게 되었다...
계속 원정을 계획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그는 도시를 돌려주고 동생을 데려오는 대신 동생이 무어인의 감옥에서 끔찍한 죽음을 당하도록 내버려둔다...
무어인이 정복한 세우타는 그의 계획에서 지속적인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엔리케는 세우타가 점점 더 멀어지는 자신의 탐험계획을 실현시킬 수 있는 핵심임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정복당하기 전까지 세우타는 무역으로 활기가 넘쳤다...
미지의, 그리고 멀리 떨어진 내륙에서 온 캐러밴들이 2만이 넘는 상점에 물건을 제공하기 위해 아름다운 보물들을 운반해 왔다...
금, 은, 동, 후추, 민트, 정향, 생강, 심지어 비단, 소금, 산호, 진주 등이 복잡하게 얽힌 무역교류가 이루어졌다...
이제 세우타가 기독교화되었기 때문에 어떤 캐러밴도 세우타에 올 수 없었으며 이윤은 사라졌다...
그러나 과거 역사는 엔리케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는 체계적으로 아프리카의 무역로에 대한 모든 정보를 모았다...
교양있는 유럽인으로서 엔리케는 동쪽으로 아시아가 넓게 펼쳐져 있다는 마르코 폴로의 보고를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확신했다...
정보제공자들로부터 캐러밴이 몇 주씩, 몇 개월씩 여행 중이며 향료 원산지가 대부분 서아프리카 해안이 아니라 동쪽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시아에 도달하기 위해 우선 배를 타고 아프리카를 일주해야 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배를 타고 아프리카를 돌아서 갈 수 있다는 말인가?...
바로 그것을 밝혀내야 한다!...

포르투갈 상비센터의 황량한 갑인 사그레스에서 엔리케는 해양학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모았다...
자석나침반, 풍향표시판, 천체관측기를 사용해 본 경험이 있는, 세계 각지에서 온 항해자와 유명한 지도제작자, 학자, 발명가 등을 포함해 가까운 타호 강과 도우루 강, 먼 라인 강과 루아르 강의 선공들도 있었다...
1419년 사그레스는 개축된 그의 전략적 사령부였다...
엔리케의 탐험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한 신경중추였다...
선장들은 탐험여행에서 귀향한 후 그들이 발견한 것을 보고했다...
엔리케는 포르투갈 세계탐험의 매니저였다...
그 모든 것이 엄청난 돈을 집어삼켰다...
엔리케는 우선 개인재산을 투자했다...
1420년부터 강력한 기독교 기사단을 관리하게 되었을 때, 그는 기사단의 자금을 사용했다...
그런데 15년 동안 그 결과가 얼마나 빈약했던가!...
1419년과 1433년 사이에 엔리케는 마흔 번이 넘는 원정을 보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원정에서 어느 누구 하나 보자도르 곶을 거쳐 남쪽으로 나아갈 용기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그에게는 실망스러운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엔리케는 자신이 손을 뻗기만 하면 먼 남쪽에서 엄청난 보물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보자도르 곳이 이를 방해했다!...

남쪽으로 항해하기를 두려워한 선장들 중 몇 명은 서쪽으로 항로를 잡았다...
적어도 그들은 약간 이루기는 했다...
마데이라와 아조렌을 발견한 것이다...
재발견이다...
왜냐하면 이 섬들은 페니키아인들이 이미 고대부터 알고 있던 섬이었는데 그 후 세계지도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1433년 여름, 엔리케 왕자는 마침내 인내심에 보상을 받았다...
그 해 6월에 처음으로 "선장들 중 가장 탁월하고 순종적인 사람", 즉 에아네스에 대해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에아네스에 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라고스 출신으로, 사그레스에 있는 엔리케 궁정의 시동이었다...
그의 선원들은 대부분 낮은 계급 출신이었다...
1433년 에아네스 기사단이 출항했을 때 그가 받은 명령은 보자도르 곶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단지 몇 마일이라도"...
이전의 많은 선장들처럼 에아네스도 첫 번째 여행에서 실패했다...
그는 남위 30도에 있는 노트 곶을 지나갔다...
그런 다음에 서쪽 카나리아 제도로 항로를 잡았다...

그동안 실망하는 데 익숙해진 엔리케는 에아네스를 처벌하지 않았다...
엔리케 왕자의 전기작가인 고메스는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이제 왕자는 그가 원정 보낸 사람들이 귀향하는 것을 맞이했다. 그는 항상 대단한 인내심을 가지고 절대로 그들의 실패를 비난하지 않았으며 여행에 대한 보고에 귀를 기울였다.
1434년 왕자는 같은 배를 준비시키고 에아네스와 따로 면담하면서 보자도르 곶을 지나가기 위해 최선을다하라고 종용했다. 그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해도 그것만으로 족하다고 했다. 왕자는 말했다. '자네는 이보다 더 큰 보수를 받게 될 위험은 만날 수 없을 걸세. 자네는 이 곶에 관해 사람들이 이댜기하는 것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되네. 그것은 높은 명성을 누릴 수 없는, 나침반과 지도를 따라 항해하기에는 너무 무식한 사내들이 퍼뜨린 이야기들이지. 그러니 출발하게. 사람들의 말은 듣지 말게. 바로 항해할 준비를 하게나. 신의 은혜를 받아 이 여행은 자네에게 많은 재물과 명예를 가져다줄 걸세!'"

그렇게 에아네스는 다시 남쪽을 향해 떠났다...

그 때가 5월 말이었다...
그의 뒤로 보이는 알가르베 지방이 전성기를 맞은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앞에는 사하라 해안이 펼쳐져 있었다...
불타는 태양 아래 이글거리는 사막...
무너져 내리는 모래와 위치가 계속 변하는 수심이 얕은 지역...
그러나 에아네스는 사하라 사막에대한 두려움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을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번에는 세계의 변경을 지나 과감하게 항해하리라고 결심을 굳혔기 때문이다!...

바람과 조류가 유리하면 그의 카라벨은 하루 평균 110킬로미터를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니 에아네스는 노트 곶까지 800킬로미터를 가는 데 일주일 이상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가 여행에서 가장 쉬운 구간이었다...
에아네스의 카라벨은 잘 아는 해안을 따라 항해했다...
해안에는 아마도 저명한 육표들이 규칙적으로 간격을 두고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나 노트 곶이 뒤로 물러나고 난 후부터 선원들은 불안해졌다...
왜냐하면 배는 계속 남쪽으로 항로를 잡았고 한낮의 해가 점점 더 높이 기어 올라갔기 때문이다...

배는 카라벨의 원형인 바르카였다...
배수량은 55톤 가량 되고 반 갑판에 높은 선미와 돛대 두 개가 달려 있었다...
길이는 아마도 18미터 이상이었을 것이며 너비가 6미터 조금 안 되었다...
깊이는 깊지 않았다...
1.5미터 정도...
이 배는 연안 항해에 아주 탁월했다...
그러면서도 대서양의 태풍을 견딜 정도로 바다에 적합했다...
항해는 대부분 나침반, 측연, 조망대를 이용한 고전적인 방법을 통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에아네스는 별자리를 관측하기 위해 갑판에서 천체관측기와 항법표를 사용했을 것이며, 그럴 만한 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자료는 매일매일 태양의 적위와 위치를 수치로 제시하기 위한, 그리고 북극성의 위치를 측정하기 위한 '천체관측기와 사분의 사용지침'이었을 것이다...
밤에는 바르카 갑판에서 오일램프로 불을 밝히는 나무상자 안에 나침반을 넣어두었다...
나침반은 중세에 스텔라 마리스(stella maris)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오늘날 북극성을 지칭한다...
팔레스티나로 가는 순례자 해상여행에 관해 기술한 15세기 어느 수도사의 일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들은 나침반인 '스텔라 마리스'를 돛대 근처에 두고 또 다른 나침반은 선미의 데크 위에 두었다. 그 옆에는 밤새도록 불을 켜놓았다. 한 사람이 나침반에서 계속 별(나침반 지침면)을 관측하고 절대는 눈을 떼지 않는다. 그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역시 노래하면서 키를 조작하는 남자에게 어떻게 키를 돌려야 할 지 지시한다."

중요한 기구 중 또 하나는 모래시계이다...
이것은 당시 배에서 사용했던 유일한 시간측정기다...
모래시계는 모래가 모두 흘러내리면 30분마다 도려놓아야 한다...
역시 노래를 부르면서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나중에는 그럴 때마다 종을 쳤다...

사그레스를 떠난 지 열흘 정도 되었을 때 우현의 선수 앞에 푸에르테벤투라 섬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선원들은 곧 세계의 변경에 도착하게 될 거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괴물이 노리고 있는 곳, 태양이 너무 뜨거워 바다가 끓어오르며 인간들이 바로 새까맣게 타버리는 곳,
자장을 지닌 암석이 스텔라 마리스를 잡아당기고, 용골에서 쇠 장식들을 끌어내는곳, 역청이 녹고 배의 이음새가 갈라지는 곳...
그래도 에아네스는 항로를 유지했다!...
태양을 찌르는 듯 강해졌고, 역청이 절말로 검은 방울이 되어 이음매에서 반짝이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해안은 점점 더 황량해졌다-그리고 곧 그들은 바로 눈앞에서 세계의 변경을 보았다...
보자도르 앞의 절벽과 암초들!
수심이 얕은 곳에 가까워지자 위험하게도 배가 부글부글 끊는 바다에서 심하게 피칭을 했다...
사내들은 선수로 몰려가 앞를 바라보았다...
성호를 긋고 몸을 떨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바닷물이 용골 밑에서 우유처럼 하얗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노 젓는 사람들이 애원했다...
"배를 돌립시다! 바다가 끓고 있어요!"...
그러나 에아네스는 빈 포도주통을 내려 물을 가득 채우고 난 후 다시 끌어올리게 했다...
그는 물에 손을 넣어보았다...
선원들에게도 똑같이 하라고 명령했다...
"알가르베 해안의 바다와 마찬가지로 이곳의 바다도 끓는 것이 아니다."...
그는 비난하듯이 말했다...
"바다가 하얗게 끓어오르는 것은 절벽에 부딪혀 생긴 거품일 뿐이다."...
그리하여 에아네스는 선원들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측연을 재는 사람이 바닥이 세 길도 채 안 된다고 알려왔다...
이제 에아네스가 탐험의 황금시대를 이끌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는 서쪽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암초와 평행으로 달렸으며 어둠의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하루 종일 그렇게 해안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쪽으로 항해했다...
아침 여명이 시작될 때 그들은 돛을 돌려 미지의 해안에서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그런 다음에 긴장하며 돛을 관찰했다...
1,000년도 더 전에 아라비아의 다우선이 맞바람을 받으며 인도양의 전 위도를 돌아다닌 바로 그 삼각돛이 바람이 채워졌다!...
바람과 조류가 좌현에서 앞으로 부는데도 바르카는 천천히 남동쪽으로 움직이더니 "바람을 가득 받아 부푼 채 풍상으로 60도 각도로 나아갔다."...
그들은 천천히, 그리고 안전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그들 앞에 사하라의 모래 절벽이 안개 속에 희미하게 떠올랐다...

뜨거운 한낮에 그곳을 지날갈 때 선수에서는 바다가 찰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뱃전에 부딪치는 바람의 쉿쉿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선원들이 다시 뱃전으로 모여들었는데 눈에는 두려운 기색이 역역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며칠 전에 지나온 것과 동일한 해안이 천천히 나타나는 듯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갔을 때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알았다...
이 육지는 남쪽으로 멀리 펼쳐져 있었다...
평평하고 모래가 많으며 태양을 받아 반짝이는 평지였다...
균일한 형태의 해안선에는 갑이 없었다...
그리고 북쪽에서 그들이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경계선을 이미 지나왔음을 확인했다...
보자도르 곶을 지나온 것이다!...

미신은 깨졌다...
1,000년의 전설, 세계가 보자도르의 암초에서 끝난다는 전설은 반증되었다...
유명하 경계선 저 너머에, 삶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그렇게 오랫동안 생각했던 지점 저편에 새로운 대륙과 다른 민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확실해졌다...
1434년 여름, 그날의 수평선을 더 이상 장벽이 아니었다!...
고메스는 엔리케의 감회를 이렇게 기술했다...

"질 에아네스는 자신이 의도한 바를 실행했다. 위대한 여행에서 그는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보자도르 곶을 돌아 항해했으며, 곶 저편에 놓여 있는 육지가 그와 다른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과 아주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의 대담함을 고려해 그 행위는 매우 높게 평가를 받았다.
에아네스의 귀향은 환영을 받았다. 그는 승진했으며 왕자를 통해 충분한 물질적 보상이 전해졌다."

에아네스의 여행은 포르투갈 사람들이 남쪽으로 위대한 돌진을 감행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들은 곧 희망봉을 거쳐 동쪽으로 인도의 문 앞까지 나아갈 것임, 엔리케 왕자의 꿈은 바로 동화적인 방식으로 실현될 것이다....

엔리케 왕자는 원정대를 여러 차례 더 파견했다...
일부는 다른 선장의 지휘를 받기도 했지만 에아네스 역시 다시 한번 세상의 이목을 끌어모았다...
1444년 에아네스는 보자도르 곶 남쪽으로 48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로잡은 최초의 원주민을 포르투갈로 데려왔다...
그럼으로써 유럽 역사에서 불명예스러운 사건이 시작되었다...
즉, 노예무역은 그 자체로 상당한 사업이 되었다...
물론 포르투갈 사람들은 인종주의적인 교만에 빠져 있지 않았다...
특히 스페인 사람들이 나중에 그들을 비난했던 것처럼...
고메스는 '그들을 친절하게 대했고 그들과 포르투갈 하인들 사이에 어떤 차별도 두지 않았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기독교로 개종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손 기술을 가르쳤으며 그들과 포르투갈 사람들 사이에 결혼이 이루어졌다...

1445년 엔리케의 카라벨이 북위 17도, 서경 30도의 베르데 곶, 즉 아프리카의 서쪽 끝에 도착했다...
이제 사막 대륙은 그들 뒤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해안선은 다시 동쪽으로 이어졌다...
여기 기니 해안에서 활발하 무역이 전개되었다...
1450년 엔리케는 25척을 가득 채웠다...
마침내 포르투갈을 위한 엔리케의 투자가 보상을 받았다!...
1460년 엔리케 왕자가 사망했을 때 보상이 시작되었다...
수확은 다른 사람이 거두었다...
해안이 다시 동쪽으로 확장될 때 왕좌를 차지한 사람은 잠시 아프리카에 관심을 잃었다...
아폰수 왕은 고메즈에게 정찰할 수 있는 권리를 임대했다...
그는 이윤을 얻기 위해 매년 해안 100리그(대략 550킬로미터)를 탐험할 수 있었다...
5년간의 임대계약은 고메즈에게 유리한 사업이었음이 드러났다...
포르투갈이 1475년부터 정찰권을 직접 행사했다...
아폰수 왕의 후계자인 주앙2세는 탐험에 대한 열정 면에서 엔리케 왕자보다 뒤지지 않았다...
그리고 고메즈가5년 동안 카타리나 곶까지 2,400킬로미터를, 오늘날의 가분에서 적도 남쪽으로 2도 정도 진출하게 되었을 때 그의 상상력은 날개를 달았다...
주앙2세는 엔리케 왕자처럼 아프리카 남단을 일주한다는 계약을 맺고 여러 차례 원정대를 파견했다...
오늘날에도 사용하고 있는 후추 해안, 상아 해안, 황금 해안, 노예 해안 같은 명칭들은 당시 어떤 것이 비싼 물건이었는지를 보여준다...

1488년 디아스(Bartholomaus Dias)가-전혀 의도하지 않은 채 태풍에 밀려 희망봉을 돌았다...
이제 인도양으로 가는 길이 자유로워졌다...
비밀 유지는 더욱 강화되었다...
그 사이에 포르투갈 사람들은 스페인을 강력한 경쟁자로 보게 되었다...
콜럼버스는 서쪽 항로를 따라 인도로 가는 길을 찾기에 적합했다...

유럽은 중세 말기였다...
에아네스의 여행에 앞서 유럽 사람들은 서아프리카 해안에서 1.6킬로미터 더 앞으로 나아가는데 1,000년이 걸렸다...
1년에 1.6킬로미터도 나아가지 못한 셈이었다...
그이 여행 이후에는 인도까지 가는 나머지 1만 6,000킬로미터가 70년도 안 되는 세월에 탐험되었다...
한 왕자의 억제할 수 없는 믿음에 자극받은 한 선장의 용기가 그들이 죽고 500년이 넘도록 유럽의 세력과 무역을 확장시켜 주었다...


'베른하르트 카이'의 "항해의 역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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