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빈 논에도...
주룩주룩 내립니다...
겨울 가뭄끝에 농사철이 다가오니 이렇게 반가울수가요...
이렇게 내리는 비를 단비랍니다...
'단비'...

2. 겨우내내...
날짐승, 들짐승, 어른벌레들의 안식처였던 덤불이...
바람결에 앙상했었는데...
봄비에 축 늘어져 마지막 소임을 남기고 있습니다...

3. 헐거운 숲...
더 이상 내려놓을 것이 없는 듯...
이맘때가 가장 헐겁다고 하는군요...
모든 것이 흙으로 다시 돌아가 공동의 자산으로 남겠다 싶습니다...
숲의 밑거름, 그 토대위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겠지요...
(저 밭사이를 가로지르는 고란이가 보이십니까?)

4. 저 비닐아래...
마늘과 양파의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는데...
그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정겹습니다...
솨~와~솨~와~...

5. 여름내내 뽕나무에 기대어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박주가리...
마지막 남은 속살을 바람결에 비단처럼 날려보내고...
쭉정이만이 미이라처럼 달려있습니다...
"저도 좀 내려주셔요!~"...

6. 저 모퉁이 돌아가면...
내 삶의 한꼭지가 거기에 있습니다...

7. 지난 겨울을 지나며...
많은 나무들이 쓰러졌습니다...
그 죽은 나무는 또 다른 생명체들의 삶의 보금자리가 되고...
먹이가 되어...
제2의 삶을 살아간답니다...
살아온 날만큼...

8. 집 아랫마당 양지바른 곳...
산수유 꽃망울이 곧 터질 듯합니다...

9. 윗마당의 진달래도...
북풍한설 온몸으로 맞으며...
겨울을 잘 견뎌냈구요...

10. 미선나무...
하얀 개나리라고 하더군요...
곧 그 꽃을 볼 듯합니다...

11. 지난해 6월 풍성한 매실을 선사한...
매실나무...
그 붉은 꽃과 그윽한 향이 또 찾아오겠지요...
가지끝에 맺힌 물방울이 보석처럼 빛나고...

12. 윗마당으로 오르는 돌계단...
다리걸음 불편하신 내 어머니...
오르실 때 힘드셔서...
왼쪽 잔디밭으로 오르내리십니다...
연세가 드시니 한해한해가 다르시네요...
돌과 돌 사이가 멀다십니다...

13. 아~...
오늘 하루...
촉촉합니다...
차분합니다...
그립습니다...




봄비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나 될까.

2009년 4월 20~21일 서울지역에 41.5㎜의 비가 내린 것을 비롯해 당시 전국에는 봄비가 촉촉이 내렸다.
국립기상연구소에서는 이때 내린 봄비의 경제적 가치가 29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분석했다.

댐·저수지에 확보된 수자원 가치가 59억2000만원,
미세먼지·이산화질소·일산화탄소·아황산가스 등 대기오염물질의 농도를 낮춘 것이 1754억원,
산불 방지 효과 4억8000만원,
가뭄 피해 예방 1086억5000만원 등이다.

여기에 봄비를 머금고 피어나는 진달래·개나리·벚꽃의 아름다움까지 포함시킨다면
봄비의 몸값은 더 치솟을 것이다.
요란스럽지 않게 조용히 찾아오는 봄비가 더없이 고마운 이유다.

출처 : [중앙일보] 입력 2012.03.17 00:44



봄비를 맞으며...

봄비 내리는 오후...
클래식 우산을 쓰고 산책을 나섭니다...
산란한 분위기의 봄볓보다는 차분한 이 촉촉함이 좋군요...
우산위로 내리는 빗소리 색다릅니다...

지난해 들깨밭 휑한 고랑, 비닐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조금 소란스러워...
‘솨~와~ 솨~와~’
길을 돌아서는 모퉁이...
숲의 갈참나무 잎사귀와 낙엽에 쏟아지는 소리는 더욱 깊이가 있습니다...
한없이 헐거워진 이 숲이...
봄비로 더욱 헐거워지겠지요...
새싹이 돋을 때까지...

걷는 농로에 물이 고일정도로 비가 내리니...
무성했던 덤불이 겨울지나 이 비에 더욱 가엽군요...
허리굽혀 더욱 내려앉습니다...
초라하게...

새들은 비를 피해 보이지 않고...
앞산에 걸린 비안개가 아늑함을 선사하네요...
빈 논에도 성스럽게 주룩주룩 내립니다...
풍요로움을 예약하듯...

한낮인데 커다란 고란이가 너른 밭을 가로질러 숲으로 달려갑니다...
녀석, 바쁘고 놀란 듯하네요...

집앞 뜰에도...
많은 비가 내립니다...
산수유나무, 매화나무, 진달래나무, 미선나무...
꽃망울이 터질 듯하군요...

이른 저녁으로...
닭 모이와 개 사료를 줍니다...
촉촉한 비맞으며...

이 비 그치고 꽃샘추위 물러가면...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겠지요...
그래서 이 비가 봄의 진정한 서막이다 싶습니다...

이제...
봄꽃의 향연을 기다려야지요...
윗마당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오늘따라 멀다싶습니다...
내 어머니 오르고 내리실 때 힘드시겠다 싶고...
빗길에 조심하셔야 할 듯...

오늘 아침...
안성 일죽터미널에 어머니를 모셔다 드리며...
무릅관절이 아프셔서 휘어진 다리로...
뒷둥뒷둥 걸어가시는 뒷모습, 한참을 보고왔습니다...
이제 곧 봄의 향연인데...
내 어머니의 인생은 무거운 한겨울이다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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