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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출신 프랑스 왕비 「카트린 드 메디치」...

황승현 | 2011.11.21 19:16 | 조회 3785


카트린 드 메디치의 삶은 프랑스사에 등장하는 한 뛰어난 인물의 삶일 뿐만 아니라 근대 유럽 문명의 결정적인 순간이기도 하다...

카트린은 프랑스 왕을 지낸 세 아들의 황태후로, 무려 30년 동안이나 섭정을 했다...
이탈리아인인 그녀는 1519년에 태어나 1533년까지 피렌체와 로마에서 자랐으며, 프랑수아1세의 둘째아들인 앙리 오를레앙과 결혼하여 프랑스 궁정에 들어왔다...
카트린은 16세기 이탈리아의 산물인 동시에 16세기 프랑스의 산물이다...

정략결혼으로 피렌체를 떠난 그녀는 그 누구의 관심이나 배려도 받지못하고, 무관심한 남편의 침대 속으로, 적대감이 난무하는 궁정 속으로 내팽개쳐졌다...,
하지만 그녀는 바로 그곳에서 평생을 다 바쳐 사랑할 대상, 매혹적이지만 불안정하기 이를 데 없는 골족의 나라, 프랑스를 발견했다...

그녀의 적응 방식은 궁정 사람들과 정반대였다...
당시 그들은 이탈리아화 되는 게 유행이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프랑스화 되도록 자신을 채찍질해야 했다...
그녀는 왕족이 아니라 금융 가문의 후손이었고, 낯선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사랑은 늘 짝사랑으로 이어졌고, 그녀가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은 끝이 없었다...

그녀는 남편을 우상처럼 섬겼지만 남편은 오로지 의무감으로만 그녀를 받아들였고, 그런 남편의 그늘 속에서 그녀는 마침내 프랑스화되었다...
왕과 그의 정부들, 왕가, 귀족들은 모두 다 만만치 않은 대상들이었다...
그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시련 속에서 순종과 겸손함으로 상대를 안심시켰고 무장 해제시켰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녀는 왕의 섭정 자리에 올라 그들을 통치하게 되었다...

그녀는 평생을 다 바쳐 군주제와 프랑스를 옹호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이 외국 여인이 난국에 빠진 프랑스를 구하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그런 사실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프랑스를 지켰으며, 그녀가 섬겼던 왕들은 그 누구도 이 일을 해내지 못했다...

그녀를 발루아 왕조와 르네상스, 종교전쟁의 테두리 밖에서 되살린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이 모든 것은 오로지 그녀 한 사람 속에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자라서, 왕족이 아니라서, 외국인이라서 백성들의 멸시를 받은 이 작고 통통한 여인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전대미문의 격변기를 맞은 왕국을 30년 동안 통치했다...

르네상스기는 지성과 영혼의 혁명이 이루어진 시대로, 너무나 급작스럽게 조상 대대로 내려온 믿음을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몹시 당황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는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다른 땅덩어리들과 함께 외톨이로 회전하는 둥근 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순간, 모든 것이, 그 무엇보다도 그들 삶의 근간이었던 교회의 가름침과 로마의 제도가 문제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사상의 자유가 오래된 무지의 우물에서 빠져나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카트린은 남편의 왕관과 더불어 프랑스 역사의 가장 거대하고 가장 광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분쟁을 물려받게 되었다...
바로 종교전쟁이었다...
모든 것은 독설로 시작되고, 반란과 형벌로 이어졌으며, 내란으로 치달았다...
카트린은 이 새로운 이단의 확산이 군주제와 왕국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카트린은 개인적으로 칼뱅주위자에 대해 어떠한 반감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들이 왕권을 공격하자 증오를 품기 시작했다...
감히 어떻게 왕을 공격한단 말인가? 카트린이 지키려고 그토록 염원했던 왕권을 공격한 자들은 제1왕족이나 나바라 왕인 부르봉과 그의 사촌인 콩데 가문, 그리고 이 왕족들 주변에 무장을 한 채 버티고 선 가장 지체 높고 가장 강력하고 가장 반항적인 봉건귀족인 몽모랑시 가문과 그의 조카인 샤티용-콜리니 가문, 로렌 가문, 라 로슈푸코 가문, 뒤르포르 가문, 몽고메리, 튀레 가문, 위제스 가문, 레디귀에르 가문 사람들이었다...

사실 종교전쟁은 이들 노련한 직업 군인들이 그들의 군사력을 이용, 교묘한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하고자 일으킨 분쟁이다...
이 전쟁은 겉으로는 종교의 탈을 쓰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카페 왕조 이후 끊임없이 왕가를 폄하하고 복종시켜왔던 대봉건귀족들의 반란이었다...

카페 왕조를 유지시키려 했던 카트린은 ‘종교적’이라고 일컫는 엄청난 전쟁 음모가 그녀에 맞서서, 즉 왕권에 맞서서 진행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반역자에 불과했다...
왕국은 무정부 상태가 되었고, 이 외국인 여인은 무능한 인물로 지목되었으며, 가톨릭 교회는 부패할 대로 부패했다...

반역자들은 자신들의 반란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 이유들을 내세웠다...
그들은 종교개혁이라는 아주 그럴듯한 기치를 내걸고, 왕권을 부정했다...
그들의 목적은 영지를 분할하고, 이렇게 나누어진 영지를 자기네들에게 유리하도록 재편성하는 것이었다...
그 어떤 전쟁도 이 종교전쟁만큼 잔인하고 증오심에 가득 차고 무자비하고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프랑스는 무려 40년 동안이나 내전 상태에 빠져들었다...
카트린은 이 전쟁을 막기 위해 온갖 애를 다 썼다...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토크빌은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교전쟁 당시, 프랑스에서는 왕들이 가장 적극적이고, 가장 지속적인 평등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왕권이 막강한 세력을 가졌을 때 그들은 일반국민들을 억압하는 대신, 귀족들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려고 애썼다“

카트린은 전쟁의 위력을 아예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모든 폭력은 그녀의 본성과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녀는 무력으로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고 굳게 믿었다...
“전쟁에는 승리란 게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신조였다...
이는 곧 휴머니스트의 금과옥조이다...

전쟁을 피하려 했던 그녀는 중무장한 적들 앞에서 거의 늘 패배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만의 전투방식으로 그들에게서 최후의 승리를 빼앗곤 했다...
그것은 바로 협상, 외교, 화해라는 전술이었다...
그녀는 이 패들을 써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한 승리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카트린에 대한 평가는 19세기의 대중작가들이 그녀를 음모와 배신, 독살의 주인공으로 폄하해온 탓에 오랜 기간 동안 왜곡되어 왔다...
그러나 대문호 발자크만큼은 카트린의 진면목을 알고 있었다...
그는 1840년에 직관적인 통찰력을 발휘해 카트린을 ‘정치가’로 묘사했으며, 그런 카트린의 면모는 1세기 뒤 우리 시대의 역사가들에 의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그녀는 대단히 용기 있고 지적인 정치가였다...
그녀는 누구보다 불행의 매커니즘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 불행이 치명적인 것으로 변하면 그녀는 일단 그것을 받아들인 다음 자신의 방식으로 다루었다...
즉, 불행을 감언이설로 꾀어 무장 해제시켰던 것이다...
그녀는 정치적인 감각을 타고난 여성이었다...
그녀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으며 위안을 얻었다...
마키아벨리는 더없이 소중한 그녀의 가정교사였다...
그녀는 거짓 약속과 아낌없는 선물로 그녀에게 다가온 불행을 유혹했다...

또 카트린이 갖고 있던 놀라운 성격 중의 하나는 단 한 번도 꺽이지 않았던 낙천주의, 바로 용기였다...
삶이 재난에서 암살로, 배반에서 패배로 요동칠 때도 그녀는 더 나은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이 모든 것을 극복해냈다...
슬픔과 역경에 짓눌린 이 왕비는 자신이 타고난 운명을 굳게 믿고 있었다...

어렸을 때, 피렌체에 혁명이 일어나자 시민들은 메디치 가문의 계승자인 그녀를 잡으러 다녔다...
메디치 가문을 붕괴시키려는 유력 인사들의 선동으로 군중들은 그녀의 목을 가차없이 베려고 혈안이 되었다...
어린 그녀는 수도원에 숨어 있었는데, 고함을 지르는 폭도들과 그녀를 보호하려는 수녀들의 기도 사이에 존재했던 것은 겨우 수녀원의 문 하나였다...
그러나 카트린은 당황하거나 겁에 질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강한 운명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그들과 맞섰다...
그녀는 언제나 위기를 이용해, 그 위험에서 벗어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전쟁터에서 평생을 보낸 그녀는 또한 잔인하고 공포에 가득 찬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대학살과 주위 사람들의 음모, 딸 마르그리트와 관련된 추문들, 아들인 앙리3세의 광기, 막내아들인 알랑송의 반역 등 끔찍한 순간들과 마주쳤다...
그 되풀이되는 수많은 비극들은 여태껏 볼 수 없었던 화려한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졌다...
그녀는 건축물의 거대한 걸작인 튈르리 궁을 신축했으며, 축제를 조직하고, 무도극을 기획하고, 에티켓을 도입하고, 연회를 베풀고, 혁신적인 요리법과 승마술로 화려한 무대를 눈부시게 장식했다...

그녀의 삶은 하나의 거대한 스펙타클로서,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견줄만했다...
그녀의 영혼은 이 천재적인 영국 작가가 창조해낸 주인공들과 흡사했다...
모든 사실을 알고,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검은 왕비’의 준엄한 시선은 매혹적이다...
그녀는 때에 따라 천사가 되기도 하고, 악마가 되기도 하면서 모든 것을 결합하거나 해체시켰다...

그 모든 것 앞에서도 당당했던 그녀 역시 죽음 앞에서는 무력했다...
프랑스는 여전히 내전 중이었고, 그녀의 아들은 더 이상 그녀를 존경하지 않았다...
그녀는 깊은 절망 속에서 죽어갔다...
그래서 그녀의 죽음은 그녀가 늘 쓰고 다니던 베일만큼 암울했지만, 그녀는 한 ‘위대한 왕’으로 죽었다...
백합 문양의 왕국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으며, 그녀는 자신의 과업을 완수했다...

장 오리외(Jean Orieux)의「카트린 드 메디치」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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