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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 소리없는 점령군...

황승현 | 2011.09.21 22:48 | 조회 3394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1세 역시 유혹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유지했다...
그녀가 왕위에 올랐을 때만 해도 영국은 패망 직전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1세의 통치기를 거치며, 이후 영국은 “해가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 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는 끊임없이 주변의 정치가, 실업가, 모험가, 기사들을 유혹했고, 그들은 엘리자베스 1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영역에서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엘리자베스 1세는 틸베리 고원에서 군사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여성의 육신을 입고 있지만 그 안에 왕의 담력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대들의 장군이요, 재판관이자, 그대들의 공로를 치하하는 자다”...

엘리자베스 1세는 25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기까지 늘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정치적인 줄타기를 해야 했다...
그녀의 아버지 헨리 8세는 그녀가 3살 때 어머니 앤 볼린을 참수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버지를 유혹할 수 없게 된 어머니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본 엘리자베스 1세는 생존하려면 끊임없이 유혹해야만 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터득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하지만 통치기간 내내 결혼 문제를 논란거리로 삼는 전략을 펼쳤다...
권력을 유지할 목적으로 결혼을 약속했다가 취소하기를 반복하며 수십년을 버틴 것이다... 즉 대신들과 귀족들, 의원들을 차례차례 유혹함으로써 “무제한의 복종”을 이끌어냈다...

정치가, 실업가, 기사들이 그녀의 명령 아래 앞다투어 신세계 개척에 나섰던 것도 여왕에 대한 구애의 일부였다...
월터 롤리 경은 그녀의 눈에 들기 위해 아메리카를 2번이나 여행했고, 자신이 사랑하고 흠모하는 처녀 여왕, 즉 버진 퀸(Virgin Queen)을 기리기 위해 버지니아(Virginia) 식민지를 개척해서 바쳤다...

1558년 메리 1세가 명을 다하면서 25살의 엘리자베스 1세가 천신만고 끝에 즉위할 당시만 해도,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뒤쳐진 혼돈 속의 나라였다... 스코틀랜드와의 끊임없는 분규는 물론, 에스파냐 및 프랑스와의 대립도 끝나지 않았으며, 동맹을 맺을 만한 마땅한 대상조차 없었다...

뿐만아니라 막대한 빚에 시달려 국고는 바닥을 드러냈고, 화폐 가치 하락과 급격한 인플레이션, 신․구교 간의 종교 대립으로 사회 혼란은 극에 달해 있었다... 한 마디로 파산 직전이었다...

하지만 반세기 후인 1603년 엘리자베스 1세가 45년간의 치세을 마치고 서거했을 때,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나라, 세계 역사에 남을 위대한 제국으로 탈바꿈했다...

파산직전의 나라가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로 거듭난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이 위대한 역전 드라마를 가능케 한 인물이 바로 엘리자베스 1세였음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뉴욕 타임스」지가 지난 1000년간 가장 탁월했던 리더로 엘리자베스 1세를 선정한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과연 엘리자베스 1세는 어떤 무기로 그런 대역전 드라마를 현실로 만들어낸 것일까?

엘리자베스 1세가 연출해낸 이 거대한 대역전 드라마를 제대로 관람하려면, 간단히 영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복잡한 것은 별로 없다...
당시의 영국사는 사실상 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 헨리 8세의 여성 편력기이자 휴혹의 역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1509년 왕으로 즉위하기 직전 헨리 8세는 지금의 에스파냐인 아라곤의 공주 캐서린과 혼인했다... 두 사람은 20년 가깝게 결혼생활을 유지하며 1516년 딸을 하나 낳았는데, 그녀가 바로 엘리자베스 1세의 이복언니 메리 1세다... 하지만 헨리 8세는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이 없음을 고민했고, 그때 젊고 쾌활한 궁녀 앤 볼린이 그 앞에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복잡하게 흘러간다...

앤 볼린에 푹 빠져버린 헨리 8세는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볼린과 혼인하려 했지만 교황 클레멘스 7세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이혼을 금지하는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고 영국국교회를 창설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하지만 헨리 8세와 앤 볼린 사이에도 아들은 태어나지 않았다... 다만 1533년에 딸을 낳았는데 바로 훗날의 엘리자베스 1세다...

결국 헨리 8세는 세 번째 아내로 맞이한 제인 시모어에게서 드디어 아들을 얻는다... 9살의 나이에 헨리 8세를 계승한 에드워드 6세였다...
하지만 에드워드 6세마저 16살 때 결핵으로 후사조차 없이 세상을 뜨자 결국 헨리 8세의 첫째 딸인 메리 1세가 여왕에 올랐다...
엘리자베스의 시련이 본격화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복언니 메리 1세의 치세동안 엘리자베스는 런던탑에 갇히는 등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일찍이 자신의 생모가 처형당한 런던탑으로 끌려간 갓 스물 무렵의 처녀가 느꼈을 공포감은 얼마나 컸겠는가?
아마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어머니 앤 볼린은 아버지에 의해 런던탑에 갇혀 죽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엘리자베스가 그 공포의 탑에 갇히게 된 것이다...
그것도 이복언니 메리 1세의 노여움 속에서 말이다...

당시 엘리자베스는 메리 1세를 왕좌에서 몰아내려는 토마스 와이어트의 역모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 어떠한 겨우에도 냉정을 잃지 않았고, 또 한 명의 왕위 계승자로서 그 처참한 상황에서도 “생존만이 곧 승리”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당시 메리 1세는 친어머니 캐서린의 원한을 갚으려는 듯 영국국교회를 무섭게 탄압해 “피의 메리(Bloody Mary)"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결국 후사없이 자궁암으로 죽으면서 드디서 엘리자베스가 여왕에 등극하게 되었다...
순식간에 지옥에서 천당으로 오른 극적인 반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1세는 권력이란 체스 게임처럼 얼마든지 하루아침에 뒤바뀐다는 것을 알았기에 모든 걸 한꺼번에 바꾸려 들지 않았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했던 이들에게 조차 곧장 칼을 치켜들지 않았다... 심지어 생모 앤 볼린의 억울한 최후를 항변하고 복권시키는 일조차 서두르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지속가능한 권위를 갖고자 노력했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를 연구한 학자들 사이에서는, 왜 그녀가 간통죄로 처형당한 생모의 복권을 더 빨리 주장하지 않았는지가 항상 수수께끼처럼 회자되었다... 그것은 다시금 과거에 발목 잡혀 혼란을 야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1세가 최종적인 권력투쟁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보복과 복수의 유혹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피의 메리라고 불릴 만큼 종교 문제에 관한 한 잔인했던 메리 1세와는 달리, 엘리자베스 1세는 단지 종교가 다르다는 이류만으로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을 박해하지 않았다...

더구나 엘리자베스 1세에게는 여러 해에 걸친 구교와 신교 간의 갈등으로 골 깊게 분열된 영국을 하나로 통합시켜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었다...
즉 그녀의 시선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있었다...
그녀의 승리는 곧, 미래지향적 시야로 과거지향적 시야를 극복한 구체적 증거였다...
엘리자베스 1세는 과거에 매달리거나 복수에 목숨을 거는 대신 미래로 나아갔다...

결국 엘리자베스 1세 리더십의 핵심은 다름 아닌 “균형잡힌 유혹”이다...
스탠포드 대학교의 토렌스 교수는 리더십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최고의 리더십이 발휘되는 순간은, 여성의 감수성과 남성의 강인함이 결합될 때다”...
엘리자베스 1세는 이 2가지를 매우 적절하게 결합시킨 대표적인 리더였다...
엘리자베스 1세는 연민, 동정, 인내, 그리고 경청의 태도 등 여성적 특성과 동시에, 대담하고 결단력 있고 야심찬 남성적 특징까지 고루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절묘하게 결합된 여성성과 남성성으로 영국, 더 나아가 유럽을 유혹했다...
그리고 그 유혹은 그녀와 그녀의 왕국을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도록 만들었다...

정진홍님의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에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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