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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느림보 할머니

이명우 | 2011.02.09 07:50 | 조회 4260
행복한 느림보 할머니


정유연 님 | 인천시 연수구

할머니는 시장 골목을 느릿느릿 걸어가며 콩나물도 사고, 도토리묵도 사셨습니다. 한참 뒤따라가는데 자꾸 부스럭 소리가 들렸습니다. 할머니가 엿장수 수레에서 울리는 트로트에 맞춰 작은 움직임으로 어깨춤을 추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손에 들린 비닐봉지가 박자에 맞춰 소리를 냈던 것입니다.

나는 시장 한쪽에서 쉬고 있는 엿장수에게 다가가 엿 한 봉지를 사서 할머니께 드렸습니다. 그때 할머니가 “할망구 이거 하나 잡숴” 하고 상추 팔던 할머니에게 엿을 내밀었습니다. 이후 쑥 팔던 할머니에게도, 피망 팔던 할머니에게도 엿을 나눠주셨습니다. 채소 시장을 한 바퀴 돌아오신 할머니 손에는 달랑 엿 두 개가 남았습니다.

“할머니, 호박엿 좋아하시면서 왜 그렇게 몽땅 나눠주셨어요. 조금 남기고 주시지.”
“아까 니 엿 사고 있을 때 고 옆에 상추 팔던 할망구가 니 손 우에 엿 쪼가리를 요리조리 한참 쳐다보다가 고마 상추만 한 개 뜯어갖꼬 목구멍을 채우는 기다. 그런데 우찌 안 주겄노. 상추 할매가 묵으믄 피망 할매도 한 개 묵고 싶은 기라. 사는 게 지 입만 챙기는 게 아인 기라. 남의 입도 비었는가 한번 봐주갑시로 살아야 내도 맘 놓고 덩실덩실 춤추며 사는 기라.”

나는 할머니가 왜 그렇게 느리게 사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내 앞만 보고 달리면 주위는 뭉개져서 하나도 안 보입니다. 그렇게 살면 달리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춤춰볼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그냥 행복한 느림보로 사셨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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