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 밀가루, 이스트, 설탕, 소금, 계란 등의 재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내일이라는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재료들 중에서도 고통이라는 재료가 꼭 필요하다...
누구든 고통없이는 빵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고통은 불행이라는 이름으로 누구에게나 시도 때도 없이 닥쳐온다...
이것이 삶의 본질이다...
운명과 죽음이 삶의 일부이듯 고통도 반드시 거쳐야 할 삶의 한 과정이다...
그래서 누구나 고통을 감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도스토옙스키는 “내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내가 고통을 겪을 만한 가치조차 없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라고 했다...
인간존재의 가치가 바로 고통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만든 내일이라는 빵에도 고통이라는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빵은 없다...
사랑과 이별의 고통, 분노와 상처의 고통, 배반과 증오의 고통, 가난과 좌절의 고통이 밀가루와 이스트와 함께 들어가 있다...
물론 기쁨의 눈물 몇 방울과 희망의 미소 몇 모금이 가끔 들어가기도 했다...
문득 사순절에 예수 수난극을 관람한 한 부부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연극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은 그들은 공연이 끝나자 무대 뒤로 가서 예수 역할을 한 배우을 만나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때 남편이 극 중에서 배우가 지고 갔던 십자가 소품을 발견하고 부인에게 카메라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여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내 모습을 한번 찍어줘요”...
남편은 예수를 흉내 내 어깨에 커다란 십자가를 짊어진 자신의 모습을 찍으려고 했다...
그러나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속이 텅 빈 것인 줄 알았는데, 이게 왜 이렇게 무겁죠?”남편이 배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배우가 말했다...
“만일 무거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나는 그 역을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십자가의 본질은 무거움에 있다,,, 그 무거움은 바로 고통의 무게를 의미한다... 만일 십자가가 무겁지 않다면 그건 한낱 가벼운 나무둥치에 불과하다...
우리 삶의 본질도 마찬가지다...
십자가처럼 고통의 무거움에 의해 형성된다...
만일 가벼움에 의해 형성되기를 원한다면 가벼운 것이 십자가가 아니듯 그것 또한 우리의 삶이 아니다...
당연히 내일이라는 빵조차 먹을 수 없게 된다...
내일이라는 빵을 가장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무거운 고통이라는 재료가 적절히 들어가야 한다...
평창도 실패라는 고통의 재료가 들어갔기 때문에 겨울올림픽 유치 성공이라는 맛있는 빵을 굽게 되었다...
미래의 나라 곳간을 비워버릴 수 있는 정치 포퓰리스트들의 온갖 주장에는 내일이라는 빵을 굽기 위한 오늘의 고통이 도외시돼 있다...
고통과 인내의 재료 없이는 어떤 국가의 국민도 맛있는 빵을 구을 수 없다...
시인 정호승님의 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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