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이 열매를 만들 때에는 열매를 먹을 동물을 염두에 둔다...
깊게 들여다보면 나무들이 생산해 내는 열매의 양은 자신이 동물에게 먹힐 양과 살아남을 양을 계산한 결과이며, 나아가 주기적으로 열매양을 조절함으로써 열매를 먹는 동물의 개체수를 조절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 사람이 열매를 먹을 여지가 있는 셈이다... 만일 식물이 생산하는 모든 열매가 다음 어린나무로 자란다고 상상해 보라...
거리의 벚나무가 생산해 내는 버찌열매를 보고 있으면 사방이 온통 벚나무로 채워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지 않은가...
열매란 무엇보다 전파가 목적이다... 먹히는 것은 일종의 의도이자 목적이다... 그 목적을 달성해 준다면, 새든 사람이든 식물은 가리지 않는다...
간혹 산행중에 만난 열매를 따 먹은 일에 일종의 죄책감을 느낀 적이 있다면 이러한 사실은 다소 위안이 된다...
이렇게 열매의 특성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나무 자신과 나무를 둘러싼 생물간의 상당히 합리적인 질서와 전후 관계를 알 수 있다...
물론 숲의 생태는 아주 복잡하고 다양해서 어떤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완전한 설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숲이란 하나의 질서나 현상만으로도 상당히 합리적인 설명을 끌어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에게 종자의 번식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종자의 분산을 바람이나 물과 같은 자연적인 조건이나 동물들에게 의존해야 한다...
많은 동물 역시 식물들에 그 먹이나 거처를 의존해야 한다... 숲에서 형성된 이런 관계들로 인해 숲은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
숲에서 열매를 감상하기에 앞서 이 열매 속에 발전해 온 나무의 긴 역사를 생각할 수 있으면 얼마나 겸손해질까... 그 시행착오의 순간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게 했을까... 물론 식물이나 다른 생물들이 이룬 성공의 역사는 수없이 많다...
이제 곧 겨울이 오면서 다시 월동의 성공을 우리는 이야기할 수 있다... 이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숲과 그 속의 생물들이 얼마나 잘 짜여져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최상의 구조인지를 나타내 주기도 한다... 여기에 사람이 끼어들 여지는 없는 듯하다...
사람이 물러서기만 해도 자연도 숲도 스스로의 힘에 의해 보호되고 성장한다... 올 가을, 숲은 여전히 많이 성장하고 풍성해질 것이다... 사람들을 지치게 만드는 바로 그 여름 더위가 나무의 열매를 충실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물론 성장의 열매는 사람이 거두어도 좋으리...
정말 이 정도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차윤정님의 “숲 생태학 강의”중에서...
http://blog.daum.net/hwangsh61/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