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을을 대표하는 꽃 "벌개미취"입니다...

황승현 | 2013.09.27 15:17 | 조회 2660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산에만 피던 연보라색 '가을 전령'…
이젠 도심 화단·도로변에도 흔해져
88올림픽 계기 전국으로 확산…
30년만에 들국화에서 관상용 안착
한국 특산종…
우리 땅엔 우리꽃 입증
코스모스 대신 '가을꽃'으로 떠올라

저는 벌개미취입니다. 요즘 연보라색 꽃을 본격적으로 피우기 시작했지요. 원래 저는 산에 사는 야생화였습니다. 햇볕이 잘 들고 습기가 충분한 계곡이나 산 가장자리가 제가 좋아하는 서식지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산보다 도심 화단이나 도로가에서 더 흔히 볼 수 있답니다. 연보랏빛 꽃잎과 노란 중앙부의 꽃망울이 크고 풍성한 데다 자생력도 강하고, 이 나라 특산종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우리 무리가 전국으로 퍼졌기 때문입니다. 한 번 심으면 뿌리가 퍼지면서 군락을 이루어 따로 관리가 필요 없는 점도 장점이지요. 촘촘한 뿌리가 경사진 곳 흙이 무너지는 것까지 막아주기 때문에 금상첨화입니다.

저는 다 자라면 키가 50~80㎝ 정도입니다. 진한 녹색 잎 사이에서 줄기와 가지 끝에 한 송이씩 피는 꽃이 시원합니다. 저희는 한두 포기가 아닌 군락으로 피어야 멋집니다. 개화 기간도 길어 7월부터 10월쯤까지입니다. 제가 피기 시작하면 곧 가을이 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저를 '가을의 전령'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제가 전국으로 퍼진 계기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습니다. 당시 국가 중대사들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국토 가꾸기 사업이 벌어졌습니다. 도로변에 루드베키아, 피튜니아, 메리골드, 샐비어 등 외래종들을 심기 시작했지요. 이때 김창렬 한국자생식물원장은 기왕이면 우리 고유의 꽃으로 도로를 장식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떠올린 꽃이 저였답니다. 두 행사가 모두 가을에 열렸는데, 제가 대표적인 가을꽃인 점도 감안했지요. 그는 제 씨앗을 경남 지리산 자락에서 얻어 증식했습니다.

김 원장은 1985년 대관령 싸리재에 우리 무리 5만본을 처음 대규모로 심었습니다. 가을이 오자 이 일대는 연보라색 장관을 연출했지요. 한 야생화 전문가는 싸리재에서 우리 무리를 보고 "야, (우리 꽃 중에도) 이런 꽃이 있구나!"라고 감탄한 것을 저는 기억하고 있답니다. 그 길은 많은 사람이 일부러 찾는 꽃길로 유명해졌지요. 이어 강원도 태백시가 1987년부터 저를 시 외곽 길가 60㎞에 조경화로 심어 적응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저는 해마다 새로 심지 않아도 자연 번식하기 때문에 별다른 관리가 필요 없어서 가로 조경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답니다. 태백시 성공 사례가 널리 알려지면서 우리 무리는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에 피어 있는 우리 무리 중 상당수는 한국자생식물원에서 분양받은 것입니다. 자생식물원이 우리의 친정 또는 종가인 셈이지요.

서울시는 올봄 355만 가구마다 꽃과 나무를 심자는 '서울 꽃으로 피다' 캠페인을 벌이면서 7개 한강시민공원과 안양천, 양재천, 중랑천 등에 우리 무리 200만본을 심었습니다. 강원도 평창 휘닉스파크 등 우리 무리가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도 전국에 한두 곳이 아니랍니다.

저는 햇빛이 잘 드는 벌판에서 자란다고 벌개미취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취는 어린 순을 나물로 먹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개미'라는 이름이 왜 붙었는지는 미상입니다. 다만 땅에 사는 개미와는 관련 없는 것이 확실합니다.

제 학명 'Aster koraiensis Nakai' 중에서 속명 'Aster'는 희랍어 '별'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꽃 모양이 별 모양을 닮았다고 이런 속명이 붙었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나를 별개미취라고 부릅니다. 저를 고려쑥부쟁이라 부르는 지방도 있지요. 이 나라 특산종이라 영어 이름은 자랑스럽게도 코리안 데이지(Korean Daisy)랍니다.

사람들은 흔히 저를 들국화라 부릅니다. 그러나 들국화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은 없습니다. 참나무라는 나무가 없듯이 들국화도 야생의 국화를 통칭하는 말이기 때문이지요. 가을에 산이나 공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보라색 계통의 들국화는 저와 쑥부쟁이, 구절초가 대표적입니다. 우리 셋만 잘 구분해도 가을 산행이나 나들이할 때 눈이 밝아질 것입니다.

우리 셋 중 구절초는 대부분 흰색인 데다 잎이 쑥처럼 갈라져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구별하기가 쉽습니다. 저와 쑥부쟁이는 둘 다 연보라색인 데다 생김새도 비슷하답니다. 쉽게 구별하는 방법은 잎을 보는 것입니다. 저는 잎이 길고 잎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지만, 쑥부쟁이는 대체로 잎이 작은 대신 '굵은' 톱니를 갖고 있지요. 들국화라고 부르는 꽃 중에는 노란색 무리도 있습니다. 좀 있으면 산과 들에서 피어날 노란 들국화 중에서 꽃송이가 1~2㎝로 작으면 산국(山菊), 3㎝ 안팎으로 크면 감국(甘菊)이랍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가 대표적인 들국화입니다.

저는 이제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가장 사랑받는 꽃입니다. 전문가들은 제가 30년 만에 야생화에서 관상용으로 가장 성공적으로 변신한 꽃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우리 땅에는 역시 우리 꽃이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저는 곧 제가 코스모스 대신 가을꽃을 대표할 것으로 봅니다.


조선일보 8월 13일(화) 김민철(사회정책부 차장)의 꽃이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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