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가 비단실을 타고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이유...

황승현 | 2013.06.05 13:39 | 조회 5961


식물의 방어전략

눈앞으로 윙윙거리며 달려드는 날벌레들, 성한 나뭇가지 성한 잎 하나없이 비단실 같은 거미줄이 쳐져 있고,
실 끝에는 고치들이 늘어져 한 발 내딛기가 어려운 곳이 여름 숲이다...
잔뜩 성난 몸으로 움츠린 쐐기풀은 무심한 사람의 팔뚝에 쓰라린 고통을 주고 어깨를 기어가는 송충이는
갑작스런 공포를 준다...

땅이라고 성히 발 디딜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쥐며느리, 지렁이, 지네, 노래기, 노린재, 굼벵이, 달팽이 등 온갖 토양 소동물이나 곤충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는 땅 역시 분주한 여름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무리 숲에 대한 애정이 있고, 숲에 대해 기록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도 물러설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방해꾼은 불쑥불쑥 눈앞으로 내려오는 벌레들이다...
지상에서 공중으로 올라갔던 애벌레들이 왜 다시 위험한 하강을 감행하는 걸까?...
애벌레는 왜 무성한 나뭇잎을 두고 땅으로 내려올까?...

여름 숲은 두툼하다...
나뭇잎들도 봄 같지 않게 진하고 두툼하다...
신갈나무의 여린 잎사귀가 이처럼 질기고 둔해질 줄을 알지 못했다...
모양은 완전히 달라져 구불거리기도 하고 일그러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억세고 두툼해진 잎은 고약한 맛으로 한몫한다...
가장 부드러운 잎이 가장 억세게 변한 자연의 이치 앞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이른 봄, 알에서 깨어난 무수한 애벌레들은 자연의 인심에 행복했다...
나뭇잎은 연하고 달고 향긋했다...
맛도 좋고 소화도 잘 되었다...
나무는 별스런 방어 태세 없이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어느새 나뭇잎은 딱딱하고 고약해졌다...
나무가 침입자들의 식욕이 왕성해지는 시기에 맞추어 급작스럽데 태도를 바꾼 것이다...

달고 맛나던 아미노산이나 당류 대신 잎에는 매우 쓰고 떫은 맛을 내는 탄닌 성분의 물질들이 대량으로
만들어진다...
더욱이 잎맥을 이루고 있는 리그린, 셀룰로오스와 같이 질기고 딱딱한 물질들이 잎 전체에 생겨나고
두께도 두터워진다...
살집이 두툼하게 오른 잎들은 끊어내기도 어렵고 소화도 어렵다...
탄닌은 맛도 고약할 뿐만 아니라 곤충의 소화기관 내에서 단백질이 소화되는 것을 방해한다...
이제 잎들은 맛도 없고 소화도 잘 안 된다...
이런 잎을 먹으면 신경이 둔해지기 때문에 천적을 식별하지 못하기도 하며, 변식률이 떨어지기도 한다...

결국 애벌레는 신선한 풀을 찾아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
어린 참나무 잎을 먹고 행복했었던 딱정벌레도 6월이면 새로운 먹이를 찾아 떠나야 한다...
딱딱해지고 고약해진 잎은 이제 강한 턱을 가진 사슴벌레나 조직을 파고들어 진을 빨아먹는 작은 벌레만이
이용할 수 있다...
나뭇잎이 질기고 딱딱해지는 것은 나무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다...
엉겅퀴는 가시로 무장을 하고, 억세풀은 예리한 칼날을 세워 적을 위협하고, 박주가리는 독물질을 만들어
방어 전선을 구축한다...

많은 나무들이 영양분이 적은 잎을 생산하여 적을 골탕 먹인다...
무수한 곤충들이 탐하는 나무로서는 공격자들의 특성에 맞는 각각의 살상무기를 만들낸다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
그래서 두루 골탕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을 쓰는 것이다...
나무는 새잎을 피우고 성장시키는 동안에는 잎이 부드러우나 잎의 성장이 마무리되면서부터는 잎 조직을
강화하고 고약한 물질을 만들어 저장한다...
단순하지만 이 방법은 효과적이어서 오래 사는 나무들은 대부분 이 방법을 택한다...

사실 탄소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나무들의 전공이다...
나무는 큰 힘 들이지 않고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다...
신갈나무와 소나무는 이 방면에서 아주 독보적이다...
앞서 말했지만, 신갈나무 잎의 변화는 아주 극단적이다...
소나무의 연한 순은 그냥 먹을 수도 있을 만큼 달고 부드럽다...
그러나 여름이 되면서 짙은 녹색의 날카로운 잎에는 고약한 송진이 가득 찬다...

차윤정님의 「숲의 생활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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